현지인 참견시점: 제철이 먼저다

It’s All About Timing!

words. Bob Chang

illustration. Bob Chang

전 세계에서 온 먹거리가 별다른 감흥 없이 식탁에 올라오는 시대다. 제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었다는 향토 음식도 작은 재료까지 따지면 중국이나 베트남, 칠레나 미국산이 섞인다. 지금 통영에 산다고 ‘아니에요. 통영에는 오직 통영에서만 나는 재료들로 가득해요' 라고 우길 마음은 없다. 통영 음식이 다른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재료에 있지 않다. 이를테면 초여름 중앙시장 회초장집에서 농어회를 맛있게 먹었다고 가을이나 겨울에 애써 와 봐야 못 먹는다. 돈다발을 들고 와도 소용없다. 입맛을 다시며 내년 여름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통영 음식은 타이밍 그러니까 제철이 먼저다.

겨울철

통영 하면 굴부터 떠오른다. 우리나라 굴의 무려 80%가 통영 앞바다에서 자란다.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통영 굴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굴은 껍질을 까도 섭씨 0도에 가깝게 보관하면 죽지 않는다. 냉장만 잘 하면 맛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대신 상온에 노출되면 무척 빠르게 산폐된다. 굴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굴이 가는 대신 당신이 오면 된다. 통영에 오면 바다에서 건진 굴을 재빨리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통영에서 굴요리 전문점을 찾으면 의외로 많지 않다. 어느 밥집이나 횟집을 가도 생굴은 그냥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봄철

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멍게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멍게의 70%가 통영 바다에서 자란다. 케이블카나 루지로 잘 알려진 미륵도 앞바다에 양식장이 많다.


갓 잡아올린 멍게를 먹으면 비린 맛보다 단맛이 훨씬 강하다. 초고추장도 좋지만 소금과 참기름을 섞은 기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미더덕도 빼놓을 수 없다. 싱싱한 미더덕은 회로 먹어도 손색없다. 배를 갈라 바닷물을 빼고 가볍게 씻으면 된다.


봉수골 용화사 가는 길목은 아구찜으로 유명한데 미더덕찜도 한몫 한다. 매콤해서 달콤한 통영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벚꽃 가득한 골목길 산책은 덤이다.   

여름철

햇살이 뜨거워져 곳곳에 에어컨이 돌기 시작하면 ‘여름이니까 하모 먹어야지'란 말이 통영에선 가벼운 인사말이 된다.


하모는 일본어인데 우리말로 갯장어다. 아나고나 바닷장어로 불리는 붕장어와는 다르다. 주둥이가 뾰족해 훨씬 무섭게(?) 생겼다. 하모란 이름도 잘 물기 때문에 ‘물다’란 뜻인 ‘카무'에서 비롯되었다. 횟집 간판에 갯장어회가 걸려야 통영에 비로소 여름이 찾아온다. 여름이 지나면 잔가시가 두꺼워져 회로 먹기 어렵다. 초고추장 양념 위에 콩가루를 뿌려 물회로 먹기도 한다.


갯장어는 정력에 좋다는데 도대체 ‘정력’이 뭐고 ‘정력에 좋다’는 건 또 무슨 뜻인지 씩 웃는 아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가을철

‘가을 = 전어'는 이미 공식이다. 그렇다면 시금치는 어떨까?


통영 해풍내음 시금치는 9월 하순에 씨를 뿌려 11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생산한다. 풍부한 햇살 아래 깨끗한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잎이 두껍고 씹는 맛도 좋다. 당도가 뛰어나 뿌리 부분은 따로 잘라 국물을 내는데 쓴다.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살짝 데친 뒤 샐러드 소스에 버무려도 괜찮다.


개인적으로는 진간장과 굴소스 그리고 설탕을 섞은 소스에 볶은 시금치 굴소스 볶음을 좋아한다. 삼겹살과 함께 먹어도 맛있고 그냥 흰 쌀밥하고 먹어도 맛있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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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recommends

서울에서 계절은 쇼윈도와 패션으로 온다면 통영에선 예리한 혀끝으로 느낀다.


계절을 맛보려면 먼저 이른 아침에 서호시장부터 들러보자. 그날그날 빨간 고무 ‘다라이(대야)'에 가득 담긴 생선이나 해산물이 뭔지 찾아본다. 그리고 그 생선과 해산물을 다루는 밥집으로 가보자. 어느 식당이라도 상관없다. 인스타나 블로그를 가득 채운 맛집이 다가 아니다. 높은 별점보다 올바른 타이밍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맛집이나 제철 음식 모두 구글만으로는 소용없다. 통영 사는 친구를 사귀거나 아예 한 두달 살면서 통영 사람이 되어 보자. 통영에 산다고 회만 먹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부터 몸소 느끼게 된다. 한족이 운영하는 양꼬치집도 가고 숨겨진 스테이크 집도 찾아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통영 가면 뭘 먹어야 돼' 라는 질문을 당신이 받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진짜 통영의 맛을 찾는 모험이 시작된다.